답답하고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회피의 진짜 얼굴
갈등을 다룰 용기가 있는 회피를 위해
복잡한 문제, 부딪히면 껄끄러운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이지만 이 문제를 꺼내어 이야기하는 순간 다툴 것만 같은 느낌. 일상은 우리가 피하고 싶은 일들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일을 그저 피하기만 하는 것이 맞을까? 또한, 다른 일은 매사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는 사람이 가족 문제에 있어서는 유독 회피적인 모습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보면 볼수록 모호한 회피에 대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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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회문화에 개인주의 성향이 새로이 자리 잡고, 일부 문화 콘텐츠는 감정적으로 대응하고 원하는 점을 낱낱이 밝히는 것을 ‘쿨하지 못하다’라고 여기는 등 정서적 무심함, 무덤덤함을 선호하는 현상이 생겼다. 문제에 굳이 일일이 대응하며 아파하지 말 것, 설령 그러하더라도 안 드러내는 것이 좋다는 맥락이다. 이는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문화와 맞물려 일상과 관계 전반에서 회피라는 핵심어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에는 정신건강 측면에서 유리하지 않은 회피 행동들을 회피적 인간, 회피적 애착 유형 등의 용어로 회피 행동들을 설명하곤 하는데, 일상에서 가장 흔한 회피 두 가지를 정리해 본다.

# 회피동기가 강한 회피주의자

무엇인가를 획득, 성취하면서 기쁨을 느끼는 접근동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고, 부정적인 상태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마음의 평화를 찾는 회피동기 행복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접근동기 행복을 더 주도적이고 발전적인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회피주의자의 행복이 가짜 행복인 것은 아니다. 오늘 하루 아무 마음에 걸리는 것 없이 잘 보낸 것에 안도하는 것, 큰 문제가 될 법한 작은 문제를 불씨 단계에서 꺼 버리는 행위에서 느끼는 만족감이 커서 회피주의자들은 소소한 것에서 행복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일상이나 업무, 관계에서 새로이 하기보다는 괴로울 것으로 예상되는 것들을 미리 차단하거나 끊는 일이 많으니 자칫 부정적인 에너지로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위한 차단만 하다 보면 성장은 언제 하는지?’라는 의문이 늘 마음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다.

# 가까운 관계에서 감정적 연결보다는 독립성을 중시하는 회피적 애착유형

성장 과정에서 맺는 애착 관계에서 회피적 유형을 형성한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 남에게 의존, 의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강해 자신의 독립성을 과장되게 생각하고 이를 합리화하는 경우가 많다. (예: “어렸을 때 나 혼자서 알아서 해야 하는 것들이 많았는데 그 덕분에 이렇게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는 생각)

회피적 애착유형인 사람들의 두드러진 특성은 ‘나는 문제없어’라는 태도가 확고하고 가까운 사람들의 솔직한 감정표현을 꺼려한다. 가까운 사람들의 감정표현은 ‘당신과 더 가까워지고 싶어요’ 혹은 ‘나 지금 당신에게 불만이 있어요’라는 메시지를 담은 경우가 많은데 그 어느 것도 회피적 애착유형에게는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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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피주의자가 아닌데 관계에서만 회피적일 수도 있나요?

회피주의자는 생활 전반에서 회피동기가 우세하는 것이라면, 회피적 애착유형인 경우에는 주로 친밀한 관계에서의 갈등에 대해서 회피적이다. 회피주의자 중에 회피적 애착유형이 많을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회피주의자가 회피적 애착유형인 것은 아니고, 회피적 애착유형 중에서도 오히려 회피주의자와 거리가 먼 경우도 많다. 성취나 업무는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불도저처럼 과감함을 과시하는 분이 친밀한 관계에서는 갈등을 피하고 입을 꾹 다물어 버리는 경우가 생각보다 굉장히 흔하다.

사람이 회피를 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갈등에 직접 부딪혔을 때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둘째, 다치지 않으면서 건설적으로 갈등을 해결해 본 경험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회피적으로 대처하는 습관으로 인해 우려되거나 혹은 주변으로부터 원성 어린 말을 들은 적이 있는가? 반사적으로 회피하는 자신을 자각하고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회피의 불건강한 요소를 제거하는 가장 확실하고도 분명한 첫걸음이다.

Profile
최은영 임상심리전문가/ 정신보건임상심리사

기업과 사람의 정신건강을 위해 마음으로 다가가는 기업정신건강 힐링멘토. 연세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임상심리학을 공부했다.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심리레지던트 과정을 마치고 그 직후에는 심리진단, 평가 영역에서 경력을 쌓았다.
기업에서 근무하는 사람들이 업무뿐 아니라 다양한 심리적 문제들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주로 기업 내 심리상담 및 심리치료 현장에서 발로 뛰어왔다. 다수 대기업, 공공기관, 외국계 기업에서 상담, 위기 개입, 교육을 진행했고, 근로자를 위한 정신건강 관련 글을썼다.
현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전임상담사로, ‘CIM Care Program’에 참여해 삼정KPMG 구성원들의 스트레스 관리 및 마음 치유를 위한 상담을 진행 중이다.